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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묵상

돌아온 탕자(눅 15 : 11~32) / 시골 교회, 장로님 간증

by 촌남자 2025. 1. 27.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15장 11절~32절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

 

11 O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 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대구 수성못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대구 수성못

 

(참고)

누가복음 11장 1절, 7절, 10절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묵상

이 말씀은 1절, 7절, 10절의 영향을 받아, 돌아온 탕자는 교회밖에 있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인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맏아들은 교회 안에 있는 (예수님을 믿는다며 교회 출석하는) 탕자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이 비유 말씀으로 교훈을 얻고, 집 나간 탕자(예수님 밖에 있는 탕자)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하며, 교회 안에 있는 탕자는 자신의 자세를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다일까? 다음처럼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에게 자신의 분깃을 요청하여 먼 나라로 떠나 허랑방탕한 생활로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먹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주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그는 결국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드디어 그는 '그래, 여기서 이렇게 죽어가지 말고 염치 불고하고 양식이 풍족한 아버지께로 돌아 가자. 비록 내가 방탕한 생활로 내 재산을 다 날려 버리기는 했지만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품꾼의 하나로 받아 달라고 요청하면 안 될까?'라는 마음을 품는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둘째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돌이키고 손들고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성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버지는 죽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라고 했잖아? 원래 함께 있던 아들인데 세상으로 나갔으니 죽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공식에 대입해 보면, 이 비유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다! 원래 예수님을 믿고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멀리 세상으로 가서 세상과 짝하여 살며 온갖 죄를 짓다가 문득 돌이켜 봤더니 영혼이 너무 괴롭고 굶주려 고통스러웠을 거야. 그 사람은 그냥 교회에 출석하며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일 수도 있고 교회를 떠난 사람일 수도 있어. 그래서 회심하고 영의 양식이 풍족한 아버지께로 두 손들고 항복하며 돌아온 건 아닐까? 돌아와서는 감히 아들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겠고, 그냥 품꾼처럼(종처럼) 받아달라고 말하며 회개하는 성도가 아닐까?

 

이런 경우에 첫째 아들은 겉보기로는 교회생활을 잘하는 성도가 아닐까? 하지만, 이 성도는 죄를 짓고 있다. 교회 안에서 정말 모범적이며 사회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듯하지만, 타인에 대해 시기질투하며 손가락질하고 분노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주장하면 뭐 할까? 이렇게 시기질투와 미움, 분노에 빠진다면? - 목사님에 따르면, 첫째 아들은 교회출석하며 겉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늬만 크리스천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교회 안에 있는 탕자라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잘 모르니 죄를 지을 수밖에 없겠죠. 하나님을 믿다가 타락하여 세상으로 나간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요?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교회 안에 있다고 안심하고 있다가 회개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죠. 

 

다음은 목사님의 조언(가르침)입니다. 첫째든, 둘째든 회개해야 하는 건 똑같죠? 두 부류 다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교회 안에 있다고 '난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나갔든, 교회 출석하며 모양만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든 모두 하나님을 떠난 존재로 볼 수밖에 없죠. 특히, '나는 큰 아들처럼 교회출석하며 하나님을 떠난 탕자가 아닐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교회를 안 다닌다고 하여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복잡하여 여기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무교회주의자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거든요. 물론 이는 쉽지 않을 거예요. 목사님과 교회 공동체로부터 신앙적인 도움의 손길이 없는 가운데 신앙의 전투를 치러야 하니까요. 이것은 마치 포병이나 공군, 탱크의 지원을 받지 않고 총만 가지고 적군과 싸우는 군인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둘째 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곁을 떠나서 세상과 짝하며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하고, 

큰 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아버지와 마음이 하나로 연합하지 않은 성도를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이 사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을 말하죠. 

고로, 둘째 아들은 교회를 다니다가 세상으로 떠나간 사람, 택함은 받았지만 아직 아버지께로 나오지 않은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큰 아들은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성령과 더불어 동행하지 않는 형식만 기독교인을 말한다고 볼 수 있죠.

 

대구 수성못

 

 

기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오늘은 돌아온 탕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사람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함을 알았습니다. 또한, 성도로서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도 영혼의 핍절을 느끼게 되면 무조건 두 손 들고 아버지께로 돌이켜 회개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다가도 시기, 질투나 분노에 사로잡힐 수도 있음을 압니다. 주님, 언제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긍휼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게 하옵소서. 아니 '서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제가 그냥 종노릇 하게 하옵소서. 또한, 고범죄를 짓지 않게 하시고 지난 세월 아버지를 잘 모르고 지은 허다한 죄들도 십자가 밑에 나아가 씻사오니 모두 용서하여 주옵소서.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저의 죄로 인하여 대신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지셨기에 형언할 수 없이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간증

(이 간증은 어머니께로부터 전해 들은 것입니다.)

 

당시 제가 약 3년 다니던 시골 교회 시무 장로님이셨던 김** 장로님 가정 이야기입니다. 김장로님은 결혼 후(결혼 당시는 집사님이거나 그냥 직분 없는 청년이었겠죠), 장인어른에게 예수님을 믿으시라고 수없이 전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인어른은 번번이 사위의 말을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장인어른이 간경화에 걸렸다고 하네요. 너무나 증세가 심해서 배가 남산만 하게 크게 부풀어 올랐다고 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간경화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온갖 방편을 다 써 보았지만 효험이 없어서 그냥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앞에 넓은 강이 있고 강 건너 저쪽 멀리에서 흰 옷 입은 사람이 한분 보이더랍니다. 그 사람이 손짓하며 크게 "어이, 어이~!"하고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예"했더니 그분이 "내가 네 병을 고쳐 줄 테니 나를 믿겠느냐?" 하시더랍니다. 그때 그분은 바로 사위가 전하던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 차린 듯합니다(이 부분은 정확지 않습니다. 그냥 저의 추론입니다). 그래서 대뜸 "예" 했답니다. (아픈 사람의 최대 소원은 병고침 받는 것일 테니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 뒤에 꿈에서 주님께서 어떻게 그분을 고쳐 주셨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듣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볼 때, 이 좋은 간증들을 흘려들은 것이 얼마나 애통한지요!

 

장인어른은 깨어나서부터 그렇게 많이 부어 있던 배가 싹 가라앉으며 병이 씻은 듯이 나았고, 약속대로 교회 등록하고 예수님을 믿어 장로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대구 수성못

 

이 간증도 오래전이고 보면 그분의 장인어른은 그 얼마 후에 소천하셨을 테고 천국에 계실 것입니다(간증 들을 당시에 이미 연세가 많으신 것 같았어요). 이 간증은 제 머릿속에만 남아 있고 누구도 입증해 줄 수 없지만 저는 생각나는 대로 최대한 진실하게 간증했습니다. 

 

"치료해 주신 그분이 흰옷을 입었다 하셨잖아요, 엄마! 그분이 입은 옷이 번쩍번쩍한다거나 그분이 밝은 빛을 발하셨다던가요?" 하고 질문드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에 대한 시원한 답은 듣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영어를 아시는 분들은 다음 KJV 영어 원문 성경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고어체가 섞여 있지만 사전을 찾으면 다 나옵니다. 15장 11 절부터입니다. 이 영어 성경에서 예수님 말씀은 색깔을 다르게 인쇄해 놓아서 구별하기가 쉽습니다. NKJV(뉴 킹제임스 버전)는 이 책을 현대인이 사용하는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저는 NIV에서 (없음)이라는 구절과, 개역개정 한글판 성경이나 NIV로도 뜻이 애매한 부분은 KJV(킹제임스버전)로 다시 해석하여 정확한 뜻을 가립니다. 일상에서 성경을 통독하거나 정독할 때,  KJV를 보지는 않고 개역개정 NIV 한영해설 성경을 이용합니다.

 

NIV를 올려 드리려고 하였으나 성경 한글 본문에 줄을 많이 그어 놓아 읽기에 불편할 것 같아서 KJV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