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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묵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다!(벧전 1:23)

by 촌남자 2025. 1. 9.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오늘은 아침에 생각난 것을 그냥 정리해 봅니다. 다음은 참고만 하시고, 다음 묵상을 성경 말씀의 촘촘한 그물에 걸러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보시고 혹시 상처받거나 비난에 빠질까 봐 두렵기 때문에 미리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묵상은 함께 나누기보다 저를 날마다 일깨워주며 저에게 명령하는 성격이 훨씬 강합니다. 말씀 외에 묵상을 나누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 외에는 한 의견으로 보시라는 것입니다. '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이렇게도 생각하는구나')

 

 

믿음은 예수님 영접 즉시, 말씀을 읽고 그대로 따라 행하는 것

 

▲ 믿음에 대해 - (비록 처음에는 많이 부족하고 어설프다고 하더라도) 말씀을 읽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 안 보이면 가짜일 가능성이 있어요!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일출

 


저는 미국의 폴워셔 목사님이 어떤 사람들(주로 설교자)에 의해 위험한 복음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받는 것을 잘 압니다.

즉, '그냥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말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야 (반쪽자리 구원이 아닌) 온전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설교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게 정말 교묘하게 꾸민 위험한 사상입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는 말속에는 '이미 나의 주인자리를 그분께 내어드리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폴워셔 목사님의 성경해석은 충분한 정당성이 있다(지극히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란 주인님의 약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만큼의 주인자리를 그분께 내어드리느냐에 따라 거룩의 정도는 다를지언정, 그분께 주인자리를 날마다 조금 더, 조금 더 내어드리고 나는 그만큼 더 낮은 종의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쯤은 우리가 다들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 구원에 관한 참고말씀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은 초대교회 시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할 정도일 때 나왔던 것이라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목사님들은 영접기도만 하고 교회 다니며 교회생활을 잘하면 구원받았다고 하시는데,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라고 시인하면 육체의 죽음을 죽을 수도 있는데도 그렇게 하십니까?)

 


주인자리를 내어드리지 않는다고 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요 3:5)"라고 하신 것은 말씀을 통해 잘 압니다.

거듭나는 것은 말씀을 읽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벧전 1:23).

말씀을 읽고 외우면서, 행동이나 생각은 옛 습성 그대로 있는 게 믿음입니까? 아뇨! 행해야 합니다(눅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양면 모두에서)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런 좋은 열매가 맺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율법주의자, 행위구원론자"라는 비난이나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나 행위구원론자('오직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율법이나 행위를 하나님의 성경에 있는 대로 완전하게 다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가 되어서는 절대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는 정말 경건하고 철저하여,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어쩌다가 실수로 1개만 못 지켜도 모든 율법을 어긴 것이 되므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할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비난, 오해하는 사람들)이 '믿음에는 말씀대로 따라 사는 것(행동, 실천)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를 행위구원론자라고 비난하거나 오해하는 것을 재빨리 거두어들일 것입니다. 

 

즉, 율법이나 행위를 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받는다'라는 사실에 더 보태어, (그 외에) 무언가 쉬지 않고 열심히 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아야 한다는 일심으로 열심히 선행을 하고 교회 봉사를 합니다.

 

그러면, 크리스천의 선행이나 봉사가 잘못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아주 귀하죠. 다만, 그들을 구원의 조건으로 굳게 믿으며, 그 선한 행동이나 봉사 및 헌신을 통해 ①구원받으려고 하며 ②자신의 의를 나타내고 ③자랑할 뿐만 아니라 ④타인으로부터 은근히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밝은 태양이 뜨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예수님을 믿고 성경 말씀대로 행하면 어둠속에 다니거나 어둠 속에서 헤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요 8:12, 요 9:5 )이신데 그분의 빛을 받아 그 빛을 반사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마 5:13~1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좀 생각해 보세요!

이방 종교인(무교 포함)은 모두 (순수한) 행위구원론자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믿음 없이 그냥 선행(선한 행동, 사랑 혹은 자비)으로만 구원받으려고 하니까요. 그들의 마음속에는 '좋은 일 했으니 죽으면 좋은 데 갈 거야'라는 생각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리고 상가에 가서 "고인께서는 평소 좋은 일을 많이 하셨으니 좋은 데 가셨을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예수님도 안 믿고 천국과 지옥도 안 믿으면서 '나쁜 데'는 가기 싫고 '좋은 데'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밖으로 표출된 말이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은 '죽은 뒤 복을 받는다는 사상에서 유래'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 중 하나로 바로 갈라집니다. 그래서 죽은 뒤 복을 받을 수 없으므로 크리스천에게 '명복'이라는 용어는 천부당만부당한 표현입니다. 대신,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혹은 "고인을 깊이 애도합니다" 등의 표현이 무난하겠죠? 다음 예수님의 말씀을 참고하세요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아주 친절하지만 단호하고 나지막하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39절에서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마르다가 주님께 말씀드리는 걸로 봐서, 이미 '오빠가 다시 살아남'을 절대 예상하지 못했거나 확실하게 포기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당황하고 절망하는 그녀에게 친절이 필요했을 겁니다.)

(NIV) JOHN 11 : 25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The on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they die; 26 and whoever lives by believing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어요. "(마르다야)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란다. 나를 믿는 자는 비록 그들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산단다. 그리고 살아있을 때 나를 믿는 자(나를 믿음며 사는 자)는 누구나 결단코 죽지 않는단다. 너는 이것을 믿니?" 

(KJV) JOHN 11:25 Jesus said un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that believeth in me,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he live: 26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st in me shall never die. Believest thou this?"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어요. "(마르다야)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란다. 나를 믿는 자는 비록 그가 죽은 몸(시신)이라고 하더라도 산단다. 그리고 살아 있으면서 나를 믿는 자는 결단코 죽지 않는단다. 너는 이것을 믿니?"

단어 및 설명(동사 끝에 eth가 붙으면 3인칭 단수 현재형이고, est가 붙으면 2인칭 단수 현재형)
1) resurrection 부활
2) believeth = believes
3) were dead = (육체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다 

4) whosoever = whoever(anyone who~)
5) liveth = lives (eth는 live의 3인칭 단수형)
6) believest = believe (believest : second-person singular simple present form of believe / est는 believe의 2인칭 단수 현재형)
7) thou = you

*Believest thou this? = Do you believe this? (이때 thou는 you의 고어인데요, 여기서는 you의 단수형이에요. 왜냐하면 believest가 believe의 단수형이기 때문이죠. 현대영어에서는 you의 단·복을 가릴 수가 없어 매우 불편하지만 고어체는 동사를 보고 단수 복수를 가릴 수 있었기에 훨씬 편했어요. 여기서 you는 '마르다'를 콕 집어 (단수로) 말씀하신 거예요. 이 장면에서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는 시신이면서 썩었는데도 살아났죠?)


'결단코 죽지 않는다'는 말씀에서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닙니다'. 육체의 죽음은 누구나 다 죽으므로, ' 육체가 사라진 뒤, 영혼이 안 죽는다'는 말씀입니다(영혼이 '영벌 혹은 지옥으로 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음으로써 값없이 얻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믿는 성도들은 날마다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그 말씀에 하라고 명령하시는 대로 실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즉, 자기가 어떤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행이나 봉사 및 헌신을 통해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의 의를 세우거나 타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인정욕구 등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름을 밝히고 행하는 모든 것(십일조, 봉사, 헌신 등)은 위험성이 다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믿음 안에 사는 사람의 선행이나 겉으로 나타나는 모든 행동, 생각은 그분 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신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씀 읽고 기도하며 성령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 이건 분명 내가 하는 행동이 아닌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상하네? 내가 왜 이렇게 많이 변하였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이상한 것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그분의 일을 행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자신이 구원받으려고 억지로 행하는 것(행위구원론자의 행위)이 아니고, 그냥 (늘 읽던 성경말씀이 주님의 음성으로 다가오며)  그 말씀에 따라 자연스럽게 기쁨으로 행하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이를 두고 "성령님이 내게 말씀하셨다"라고 표현하는데 사실은 늘 읽는 성경말씀이 상황에 맞춰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는 늘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나는 종의 자리로 간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그 지시에 따라 행한다, 어떤 성경말씀이 떠올라서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르며 갑자기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했다"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들 모두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것으로 다 동일한 거라고 보시면 될 듯해요. 그러니 이러한 선행이 어찌 자신의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탐스러운 사과 /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는 탐스럽고 좋은 열매가 맺힙니까? 그것은 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 좋은 열매가 맺힌다면 좋은 나무라고 판단하면 됩니다. 하루도 빠짐 없이 그렇게 살아 가시면 됩니다. 늘 성령충만한 상태가 되려면 말씀과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은 성령께서 쓰시는 검(칼)이고 기도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연결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칼도 없이 싸울 수 있습니까? 배터리가 다 닳았는데도 전자기기가 작동됩니까? / 엡 5 :9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 요 1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여러분 중 혹시 '구원의 조건으로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거기에 더해 반드시 선행이나 교회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거나 믿는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이제 그러한 생각을 철저하게 뜯어고쳐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두 부류의 신자(two kinds of believers / 행위구원론적 믿음을 가진 신자 &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을 가진 신자)의 선행이나 봉사 및 헌신은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나 결과는 동일하지만, 그 근본 동기와 행동의 주체는 위와 같이 180도 차이가 납니다. 

 

또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가만히 판단해 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좋은 열매가 안 보이면 가짜(유사 신자)일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남은 절대 판단하지 마시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자신을 자주 판단해 봐야 합니다. 좋은 열매가 맺히고 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제일 잘 압니다.

예수님께 주인자리를 내어드려야 그분이 내 속에서(혹은, 나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또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그렇게 살면 성령으로 거듭난, 열매 맺는 하루하루가 실현됩니다.

 

그런데요, 성령께서 일하게 하려면 늘 말씀을 읽고 기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말씀 그대로 행해집니다. 이것이 날마다 말씀(성령의 검)을 읽고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폴워셔 목사님 짧은 설교말씀을 들으시려면, 유튜브에서 다음 영상을 찾아보세요.

영상 제목 / 폴 워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 '우리에게는 말씀밖에는 없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유튜버 / 말씀 PT(영어성경암송 & 크리스천영어)@english_bible

 

 

위험할 수 있는 생각이나 말


1.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어. 
2. 나는 이만하면 되었어. 회개도 이만하면 되었어. 교회 봉사나 헌신도 이만하면 되었어.
3. 저 사람은 왜 저래? 저게 그리스도인이야?

위의 생각(혹은, 말)은 우리를 나태하게 만들거나 교만하게 하거나 정죄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성경말씀에) 이끌려 사는 하루하루의 끝에 우리는 예수님을 뵐 것입니다. 이래도 '(오늘 죽어도) 구원의 확신이 있다'라고 말씀할 수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치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말씀에 따라 사는 분일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마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이키는 삶을 살아가는 분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구원에 관한 구절 몇 개 외우고 다니며 그것을 암송하며 살면서 예전 삶을 그대로 답습하는 분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구원받았습니다"라는 위험성이 있는 말보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기도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더욱 타당한 믿음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빌 2:12).

 

사실, 저는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늘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렇게 살아진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깨달으면 회개하고 또 일어서서 달려갑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좀 이상할까요? "내 안에서 예수님이 일하시는 것 같아요" 혹은 "성령님이 일을 해 나가시고 나는 그냥 거기에 순종하고 따라갈 뿐입니다"라고 말이에요.

 

사천 바다케이블카 / 하나님께서는 징계(히 12:6~11)를 통해 불순종하는 아들·딸들을 올바르게 돌이키시므로, 어쩌면 이 케이블카처럼 줄로 견인하여 우리를 목적지까지 이끌어 주시는지도 모릅니다. 이를 '견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게 틀에 맞출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위의 묵상이 잘 정리가 안 되시는 분 계신가요?

이것저것 복잡하시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사시면 됩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시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어떻게 살지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은 좁은 문을 통과하여 좁은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여러분들께 다음 비디오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목사님 간증 중에 "요즘은 올바른 예수 복음을 듣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라고 합니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습니다. 잘 살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서 신앙이 그렇게 변질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온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l6FlQ9Sqn7E?feature=shared

 

 

구원은 예정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나를 아시고 나를 보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능력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만, 그것으로 마냥 기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정론에 매몰되면 "나는 예정된 사람이야. 뭐 어떻게 쾌락을 좇아 살든 나는 괜찮아. 구원이 이미 예정되었는데 절대 구원의 취소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야. 사실, 우리 인간의 편에서 할 일은 없잖아? / 저 사람은 어차피 구원이 예정 안 된 사람인 것 같아. 죽자 하고 안 믿으려고 하는데 그만 포기하자. / 쟤는 구원이 예정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 쟤한테는 전도할 필요도 없겠지. / 나는 애초에 구원이 예정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 아무리 해도 안 돼. 안 믿겨"이런 이상하고 황당한 논리적인 오류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더러 지옥의 땔감정도로 여겼다고 하죠? 구원예정론에 너무 심취하면 믿지 않는 분들에게 그와 똑같이 대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구원예정론은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는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캘비니즘의 (이중) 구원예정설은 잘못되었으며 그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갈 수 있다"라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원예정론은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크고 보편적인 사랑을 훼손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향한 그분의 보편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지극히 타당한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구원예정론은 부인도 할 수 없고(엡 1:4~5, 롬 8 :29~30, 요 6:37~40, 행 13:48, 요 6:44 등 수많은 말씀에서 유추 가능), 그렇다고 확실하게 시인도 할 수 없는 상태(마 7:13~14 / 마 7:21 / 마 4:48 / 요 3:3 등 수없이 많은 말씀에서 그에 대한 반론 유추 가능)입니다. 이 때문에 논란도 많지만 이에 대해 주님은 책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모두 말씀에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구원예정론에 너무 깊이 머물면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론은 론'이고 '설은 설'일 뿐입니다. 즉, 이론이나 견해라는 거죠.

한편,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인간이 설명한 (혹은 만든) 예정론은 다르다는 주장을 하는 목회자님도 계십니다(https://sukij3927.tistory.com/2406 참고 ; 주님은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지만, 인간들이 회개치 않으면 구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예정론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예정론은 순종과 회개 상관없이 주님이 예정하시면 다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정이 아니고 확정이다. / 본문 중).

따라서, '내가 예수님을 믿을 때까지는 전적인 은혜로 창세 전에 우리 주님께서 예정하셨구나'라고 믿으시면 정말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이후의 신앙에도 나태해지지 않는 유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예정된 사람인지 모르기에 누구에게든 전도하려고 애를 쓰게 되는 유익도 있겠죠. 

요즘은 전도해도 잘 안 듣죠?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나도 교회 다녔어요. 다 알아요." 그러나 열매는 주님께서 거두실 줄 믿어야죠. 대신 '나는 예수님을 이 땅에 나타내 보여주는 창문이다'라는 생각으로 늘 말씀 읽고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이웃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셔서 징계를 통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히 12:6~11). 그래서 엇길로 가던 사람이 징계를 통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때 철저히 회개하고, 세상에서 발을 완전히 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가짜(유사 신자)로 살아가더라도 언젠가 어디엔가 부딪혀서 다시 돌아옵니다. 그 징계는 때로는 죽음 속에 들어간 것 같이 처절하고 철저할 경우도 있어 삶의 소망이 완전히 끊어질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 기간까지 길 때도 있습니다. 또한, 일생에 그러한 크고 작은 징계가 여러 번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하세요. 그걸 통해 다시 돌이키십니다. 우리를 천국에 합당한 백성으로 만드십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